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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공상진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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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정별 : 서울시 유형문화재
  • 지정번호 : 60호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명달로 45(방배동)
  • 수 량 : 분묘 2기, 석물 7기, 토지 1필지
  • 지정일 : 1984년 11월 3일
  • 소유자 : 목천상씨대종중
  • 관리자 : 학교법인 상문학원
대성사 목불좌상

상문고등학교(방배동 1000-1)內에는 조선 명종때 정승을 지낸 상진(尙震)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이 비는 상진이 타계한 2년 뒤인 명종 21년(1566년)에 세워진 것으로 198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제 제60호로 지정되었다.

상진의 신도비는 전체높이 362㎝, 비신높이 220㎝, 폭170㎝, 너비 106㎝, 두께 36㎝이며 비신과 대석 옥개석 등 삼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문은 선조 때 영의정이던 홍섬이 지었고, 글씨는 중종의 부마이며 남원운봉의 황산대첩비문을 쓴 송인이썼다.

신도비 서남쪽 언덕에는 호석만 있는 쌍분이 자리잡았는데, 하나는정경부인 전주 이씨의 봉분이다. 상진의 자는 기부, 호는 송현이며,시호는 성안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후 매부집에서 자란 상진은 15세때까지는 학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동년배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자 학업에 매진하여 10개월만에 글이치에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중종 14년(151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에 제수된 뒤 홍문관 부제학·경기도관찰사·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명종4년 (1549년)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16년동안 재상직에 있으면서 충성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치정하여 업적이 황희와 허조 다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청렴결백한 그의 성품을 말해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는데 어느날 집안의 창고가 무너져 내린 일이 있었다.

종들이 수리를 한다고 서두르자 공이 말하기를 “네가 비록 창고를 완전하게 만들어 놓아도 무엇으로 채우겠느냐”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훗날 그가 죽자 명종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도노덕대신(悼老德大臣 : 노덕대신을 애도함)”이라는 시를 짓게 하였으며 성안(成安)이란 시호를 내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 하면 지금의 남대문로 3가 일대인 상진이 살던 동네를 조선말까지 상정승동 또는 상동이라고 하였는데 영조도 이곳을 지날 때면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 자료관리부서 문화관광과
  • 담당전화 02-2155-6201
  • 위치 구청본관 4층
  • 최종수정일 2019-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