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瑞草)란 서리풀에서 나온 말로 상초(霜草)라 불렀으며, 고구려 때에는 쌀을 서화(瑞禾)라 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이곳 서초동에서 나는 쌀을 임금님께 바쳤었다는 기록을 보아서 초는 상서로운 풀, 즉 벼를 뜻합니다.
원지동의 지석묘 군과 인근 강남구 역삼동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선사유물은 이미 신석기와 청동기 문화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서초구 일대가 역사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백제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고대 국가로의 성장 발전 과정에서 그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는 데서 알 수 있으며, 지리적으로 위례성 서쪽에 인접함으로써 도성 외곽의 경작지로서의 기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고려시대에도 지명이 여러번 바뀌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서초구 지역이 과천군 동면 · 상북면과 광주군 언주면에 속해 있었고, 다시 일제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대에 의해 성동구 언주출장소와 영등포구 신동출장소 관할이 되었습니다.
1975년 10월 1일 성동구 영동출장소와 천호출장소 관할구역의 48개 동을 독립시켜 서초구의 모체인 강남구를 신설하였으며, 1980년 4월 1일 관악구 관할구역 가운데 방배동 일원과 동작동, 사당동의 일부가 강남구로 편입되었습니다.
서초구라는 이름을 처음 갖게 된 것은 1988년 1월 1일 강남구로부터 서초구가 분리 신설되면서부터입니다. 강남구 관할의 11개 법정동(서초동, 잠원동, 반포동, 방배동, 도곡동, 양재동, 우면동, 내곡동, 원지동, 염곡동, 신원동)을 분리하여 서초구를 신설하였고, 1988년 4월 6일에 법률 제4004호「지방자치법 개정 법률」이 공포되어 5월 1일부터 서울특별시의 구청단위 자치제가 실시되었으며, 5월 16일 개청하였습니다.
서초구 지역이 현대 도시로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서울특별시 도시기본계획에서 부도심으로의 개발이 결정되어 1968년 영동 제1차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입니다. 그 후 연차적인 토지구획 정리사업에 의해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어 오늘날과 같이 살기 좋고 아름다운 전원도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