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동

院趾洞은 朝鮮時代 공용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역과 함께 설치되었던 院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院址라고 하던 것이 잘못 표기되어 院趾洞이 되었다 합니다. 원지동은 조선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동면 신원동으로 칭해왔습니다. 그런데 일제 때인 1914년 3월 1일 전국의 행정구역을 임의로 조정하면서 이곳을 시흥군 신동면 신원리라고 칭했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1962.11.21 공포)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을 확장함에 따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신원동과 분리하여 바람골, 양수리, 원터마을의 3개 부락을 원지동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1973년 서울특별시 영동출장서 관할이 되었고, 1975년 성동구로부터 분리, 신설된 강남구에 속하였다가 다시 1988년 서초구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청계산
지하철 양재역에서 옛골행 버스를 타고 원지동 미륵당이 있는 원터 입구나 옛골에서 하차하여 계곡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약수터를 거쳐 낙엽송 사이에 있는 제1야영장에 도착하여 오른 쪽 등산로를 따라가면 옥녀봉에 이르고, 왼쪽으로 가면 망경대로 향합니다. 청계산의 주등산로는 미륵당이 있는 원터 마을을 거쳐 청계사 약 수터쪽으로 제1야영장에 올라 휴식을 취한 후 좌측 산중턱으로 길마재 대피소고개에 이르는 길입니다. 청계산 등산로에는 청계사, 관현사 등의 사찰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옛날 한양으로 올라오는 과객들이 둘 러앉아 피로를 풀며 술을 마셨다는‘술바위’라는 이름의 큰 바위들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바람굴
원지동은 현재 서초구의 남쪽 끝 청계산 옥녀봉 아래 계곡마을인데, 탄천의 지류인 여의천이 흐르고 있다. 이 개천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세원에서 경부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는 청계산 입구에 조그만 마을 바람굴이 있는데 이곳은 산이 높고 바람이 세게 분다고 하여 이 이름으로 명명되었습니다.
리마을과 술바위
원지동 관현사 입구에는 현재 유원지 주차장이 들어선 곳에 옛날 양씨와 수씨가 살았던 양수리마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폐동되어 단지 그곳 골짜기와 들판이름으로만 불리는데 지금은 묘를 쓸 수 없지만 이 골짜기에는 공동묘지가 있었습니다. 이 마을 입구 경부고속도로 옆에 술바위란 유명한 바위가 있는데, 이는 옛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선비들이 여기에 앉아 술을 마시고 쉬어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 이 마을 왼쪽에는 개드락이라는 골짜기가 있고, 위쪽으로는 청계산 제2야영장이, 그 오른쪽에 장사바 위와 넙적바위가 있습니다.
삼남도로
원지동과 신원동의 경계가 되고 서울에서 성남시로 통하는 2차선 포장도로가 있는데 이것이 삼남도로입니다. 조선시대에 삼남으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이 길은 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길로 달래고개를 넘어 너더리(板橋)를 거쳐 용인이나 수원으로 갔었습니다.
원터마을
삼남도로를 가다보면 청계산 제1야영장과 청계산기도원 입구가 나타나는데, 여기가 원터(院基)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에 여행자를 위한 원(院)이 세워져 있었던 관계로 원터라 불려진 것입니다. 원지동 400번지에 일대에 원이 있었는데, 1970년대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석축이 없어지고 현재는 비닐하우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원터마을은 경부고속도로가 놓임에 따라 주민들의 일부가 이전하였고 옛 농촌주택은 현대식 주택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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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