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곳에 용(龍) 모양의 산이 있었으며 그 산에는 "용머리"와 "용허리" 라고 하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 허(許)씨, 성(成)씨, 홍(洪)씨 등 3성씨의 주민이 살았다고 한다. 어느날 허씨의 하인이 주인을 괴롭히기 때문에 허씨의 아들이 절에서 공부하다가 내려와서 홧김에 이곳에 있는 용(산)의 허리를 잘랐는데 그 이후로 이곳의 3성씨 모두가 몰락했다는 전설(傳說)이 있다. 현재 이 일대에는 택지개발(宅地開發)로 산은 모두 없어지고 인근에 잘 정돈된 용허리공원(4,642㎡)이 있다.
용허리 안내표석
용허리공원 전경
용허리공원 운동장
용허리길 전경
서초동 영동중학교 남쪽 일대에 옛날 사또들이 말죽거리를 거쳐 한양으로 왕래할 때 잠시 머물던 사도감(司都監)이 있었으며 지금의 양재역 부근에는 "사도감 고개", "사도감 들", "사도감 개울", "사도감 다리" 등 사도감과 관련된 지명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일대에는 영동택지개발(宅地開發)로 모두 없어지고 사도감 어린이공원(947㎡)이 있으며, 남부순환로 건너편으로 《서초구청》(瑞草區廳)이 우뚝 서 있다.
사도감터 안내표석
사도감 어린이공원 전경
사도감터 주변
사도감터에서 본 서초구청
서초로와 반포로가 교차하는 서초역 지상에 있는 이 향나무는 2002년 7월 3일 현재 약 864년으로 추정되며, 나무높이 15.5m, 가슴높이 둘레 1.1m로 서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향나무로 1968년 7월 3일 서울특별시 보호수로 지정(서22-3) 관리되고 있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의 상록침엽수로 겨울에도 푸르고 아름다우며 오래살기 때문에 옛날부터 신목(神木)으로 숭앙(崇仰)받았다. 번식은 씨와 꺾꽂이로 하며 공해에 강하여 요즘은 도시경관수로 흔히 사용되고 있으며 목재는 향이 좋아서 제사용 향재 또는 고급 가구를 만드는데 쓰인다.
서초동 향나무 전경
대법원 전경사진
서초동의 서초역과 반포동 조달청 사이에 있는 고개를 마뉘꿀 고개라고 불렀는데 이는 조달청 부근에 옛날 마뉘골이라는 마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뉘꿀이라는 말은 고갯마루를 의미하는 속칭으로 일제시대에는 매곡동 (梅谷洞)이라고 표기하였는데, 옛날 이 고개 주변에는 숲이 우거지고 골이 깊어 호랑이가 출몰한 적도 있으며, 산적(山賊)들의 소굴이 되어 함부로 넘나들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반포로가 관통하며 좌우로 서초경찰서와 검찰청이 위치하고 있다.
마뉘꿀 고개 안내표석
마뉘꿀 고개 인도
마뉘꿀 고개 서초방면
마뉘꿀 고개 반포방면
법원종합청사와 삼풍아파트 사이의 고개를 "장안말고개"라고 불렀는데, 이는 옛날 장안마을이 지금의 삼풍아파트 단지 남쪽기슭에 있었기 때문이며, 이 마을에는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의 4남인 임영대군(臨瀛大君)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 오고있다. 현재 이 고개 주변에는 《법원종합청사》와 삼풍아파트 등이 접하고 있으며, 과거 붕괴된 삼풍백화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임영대군(1418년∼1496년)은 이름이 구(구)이고 시호는 정간(貞簡)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닦는데 힘써 왔으며 신무기인 화차제작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장안말고개 안내표석
우면로 고개
법원종합청사
법원종합청사 전경
서초동 법원종합청사와 그 남쪽 일대에 옛날 해주정씨들이 모여 살던 정곡(鄭谷)이라는 마을이 있었으며 이곳에 조선 태종 때 집현전 대제학 (集賢殿 大提學)을 지낸 정역(鄭易)의 묘소가 있었으나 법조단지 조성으로 인하여 1984년 경기도 여주로 이장하고 현재 이곳에는 그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정역(?∼1425년)은 본관이 해주이고 시호는 정도(貞度)이며, 효령대군의 장인으로 예조·형조판서와 의정부 좌찬성, 집현전 대제학 등을 지냈으며 성품이 근검하고 왕실과 인척관계이지만 교만하지 않고 덕이 많았다고 한다. 한편 정곡마을 입구에는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을 지낸 백석(白石)정중만 (鄭重萬)이 쓴 정곡(鄭谷)이라는 표석 2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해주정씨 대종친회 건물 옆에 옮겨 놓았다.
정역신도비 안내표석
정역신도비
정곡마을 표석
정곡마을 입구
대성사 목불좌상(木佛坐像)은 조선후기 전형적인 수작(手作) 목불좌상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1993년 4월 3일)되었으며 우면산 기슭에 있는 대성사 본당에 있다. 한편 대성사(大聖寺)는 서기 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서역 인도승 마라난타 대사가 창건한 목조 사찰이며, 이곳에 있는 약수는 우면산이 소남소녀 (小男小女)의 형국을 지어 그 생기에서 흘러나와 두줄기의 생명수를 이루었다고 하여 마리난타, 고려의 지눌, 태고대사 등이 이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료했다고 전한다.
대성사목불좌상 안내표석
대성사 전경
대성사 목불좌상
대성사 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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