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龍山이 감싸안은 廉谷洞은 이 곳 지형이 염통(심장)과 같이 생겼서 염통골 또는 한자명으로 영통곡(靈通谷), 염곡동(廉谷洞)이라 하였습니다. 조선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彦州面 廉谷洞으로 칭해왔다가 1914년 염통골의 이름을 다서 광주군 언주면 廉谷里라 칭하였고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염곡동이 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1973년 서울특별시 영동출장서 관할이 되었고, 1975년 성동구로부터 분리, 신설된 강남구에 속하였다가 다시 1988년 서초구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약 500여년 전부터 全州李氏가 거주를 시작했고, 20여년 이후 거주한 新羅 眞骨 창녕(昌寧) 조(曺)씨들이 90여 가구로 번창한 집성촌으로, 마을전체가 돌담이며 감나무가 많은 마을입니다. 구룡산 전설에 따라 아홉개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았다고 합니다. 8군데가 매몰되고, 현재는 염곡마을 북동쪽에 구룡산 제1약수라는 옛날 옻우물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옻우물이란 약수 이름은 옻이 오른 사람이 이 우물 물을 마시거나 우물 울로 씻어내면 옻이 깨끗하게 낫는다는 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탑성골(塔谷)은 옛날에 탑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염통골에 속한 마을이며, 염곡리는 피난골이라고도 부르는데 6·25 전쟁 당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염곡동 언남공원에 570년된 느티나무 서울시지정 보호수22-1, 22-2 가 있어 이곳에서 주민들이 국가의 안녕과 마을에 악귀를 멀리 쫓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며 제를 지냈다 합니다. 1978년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전 가옥이 현대식 주택으로 변모되었지만 예전의 전원 모습을 그래로 지니고 있는 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