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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동은 우면산 아래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유래된 동명 으로 이 동의 위치는 서쪽은 방배와 남쪽은 양재천 경계 로 과천과 접하고 북쪽은 양재동과 접하는 곳으로, 약 270년 전부터 윗우마니, 아랫우마니 등 12개 마을로 형성된 동이었으나 1970년대 초 경부고속도로 건설이후 시작된 강남지역의 개발과 아울러 현대식 양옥이 건립되고 여러 연구기관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우면산
우면산 능선을 남태령에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와 인접 한 곳까지 거리 약 6km로 2시간~2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우면산 중턱과 계곡에 있는 약수터를 잇는 산책로가 있습니다. 산중턱 길을 따라 작은 계곡과 고개를 넘어가면 덕우산악회 약수터가 있는데, 이 곳에서 올라가면 동서남북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게 됩니다. 이 곳에는 잔돌로 쌓아 놓은 소망탑이 있습니다. 이 전망대에 서면 북 쪽으로는 바로 아래 산기슭에는 예술의 전당이, 그 앞으로 반포대교를 건너 남산쪽으로 뻗은 대로의 양쪽으로 강남과 강북의 시가지와 한강, 그리고 북한산ㆍ수락산ㆍ불암산ㆍ아차산이 넓게 펼쳐져 보입니다. 서쪽과 남쪽으로는 관악산과 청계산이, 동쪽으로는 대모산과 구룡산이 둘러서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휴식을 취한다음 서초약수터나 공무원교육원 태극약수터를 거쳐서 양재동으로 하산할 수 있습니다.
이존오 사당
우면동 49번지에는 고려 공민왕때 언관(言官)을 지낸 석탄 이존오 (石灘 李存吾)의 사당이 있습니다. 이존오(1341~1371년)는 고려말 정몽주 와 함께 과거에 급제하여 공민왕때 관직에 올랐습니다. 당시 신돈(辛旽) 이 국정을 그르치고 있어도 그의 권세에 눌려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자 신돈을 몰아내고 국정을 바로 잡자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왕과 용상이 나란히 앉아 있는 신돈의 무례함을 정면으로 힐책하여 신돈이 황급히 아래로 내려앉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좌천되 어 전라도로 귀양가게 되었고, 석탄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1371년 31세로 별세하였습니다. 그가 죽은 후 공민왕은 그의 충성심을 깨닫게 되어 성균관 대사성으로 추증(追贈)하였습니다. 이 사당에는 석탄선생의 아들인 경절공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태봉
우면동 형촌마을 옆에 있는 나지막한 봉우리를 태봉(우면동 291- 1번지)이라고 하는데, 이 곳은 조선시대 원산군의 태를 묻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커다란 돌 항아리 내에 태를 담은 백자 항아 리를 넣어두었다고 전해지나, 일제 때 일본인들이 도굴해 현재는 돌 항아리만이 남아 있습니다. 10여년전 일본의 한 미술관련 잡지에는 이와 관련하여 "이 항아리는 2개밖에 없는 희귀한 항아리로 조선 시흥군 신동면 우면리에서 갖고 왔다"라고 게재되어 있어 당시의 지명과 일치하고 태봉의 유래와 백자의 존재도 사실인 것 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일대는 우면산에 둘러싸여 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자료관리부서 문화체육관광과
  • 담당전화 02-2155-8310
  • 위치 구청본관 4층
  • 최종수정일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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