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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의 유래는 관악구와 서초구와의 경계에 솟은 우면산을 등 지고 있는 동리라는 뜻을 방배라한데서 연유합니다. 방배동 의 연혁을 살펴보면, 조선시대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방배리였 으나 일제때인 1914년 경기도 구역 확정때에 이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방배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1963년 서울특별시의 구역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방배동이 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위치는 서초 구의 서쪽 끝에 있는 동이며 서울에서 과천에 이르는 도로와 남부순환 로가 교차하는 곳에서 우면산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남태령
우리나라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여시골(엽시골), 즉 여우고개라 불리는 고개가 흔하게 널려 있습니다. 이는 예전에는 그만큼 인적이 드물고 산세가 험해 여우의 출몰이 심했던 까닭이었습니다. 한양에서도 인근 경기도로 나가는 관문에는 곳곳에 여우고개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여우고개는 다름아닌 오늘날의 남태령이었습니다. 남태령은 서울과 과천의 경계로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의 고개입니다. 18세기 말 효성이 극진했던 정조는 수원에 있는 선친사도세자의 능을 자주 참배하러 다녔었는데, 어느날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다 "이 고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남태령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에 그를 시기하던 이가 "이 고개이름은 본디 여우고개로 불리는데, 왜 거짓말을 아뢰느냐''''고 힐책하자 이방 변씨가 "이 고개 이름은 본래 여우고개이나 신하로서 임금께 여우고개와 같은 상스러운 말을 여쭐 수가 없어 서울에서 남쪽으로 맨 처음 큰 고개이기에 남태령이라 했습니다."하고 아뢰니 정조가 이를 칭찬했다고 합니다. 그 후 이 고개를 여우고개에서 남태령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에 이 고개를 여우고개라 부르게 된 것은 호랑바위가 있는 가까운 골짜기에 호랑골과 여우골이 있어 여우가 많이 출몰한다고 해서 명명되었다는 설과, 예날에 천년 묵은 여우가 사 람으로 변신하여 이 고개에 나타나기도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편 남태령이 란 이름이 붙게 된 시기에 대해 광해군 때 만들어진 춘향전에 이 남태령이 이미 나오고 있 으므로 정조 이전에 불려지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방배동 고분
방배동에는 고분이 있었는데, 이 고분에서 1970년대에 조선 초기의 목우 6점이 출토되었습니다. 높이 7~8cm의 목우들은 출토 당시 부분적으로 부식된 곳도 있었으나 거의 완전한 형태였으며, 원래 채색을 한 듯 약간의 채색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6개중 5개는 인물상으로서 3개는 여인상이고, 2개는 남자상입니다. 남자 한 사람은 평정건을 쓰고 한 사람은 변발을 하고 있어서 고려 후기 몽고의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옷도 남자는 두루마기 같은 포를 입고 있고, 한 여자는 머리에 몽수를 쓰고 두 여자는 고려말에 유행했던 얹은 머리를 하고 있으며, 길이가 긴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습니다. 나머지 한 개는 마상으로서 균형이 잘 잡히고 사실적인 표현에다 나무결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이 고분은 방배동의 개발로 인하여 현재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방배동 옛지명의 유래
이 지역은 근래에 신흥주택가로 발전한 곳이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자연부락 명칭들을 통해 옛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천씨가 많이 살았다 하여 천촌말이라 불렀고, 그 뒤에 있는 골짜기를 뒷굴, 그 뒷골에 있는 논을 뒷굴논, 천촌말 고개 너머의 벌을 뒷벌, 천촌말과 사궁말앞 벌을 앞벌, 천촌말 근처의 산개천둑을 갤둑이라 하였고 거꾸로 넘어간다 하여 가꿀고개, 논이 깊어 구레논, 쪽박 엎이 놓은 것 같다하여 쪽박산, 산 아래로 뱅돌아간다 하여 뱅도래미, 새로 생긴 마을은 새말, 옛날에 큰 마을이 있었던 터는 새텃말, 뱀장어가 많아 장앗들, 치달은 골짜기라하여 치골,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바위, 돌 한쪽으로 건너던 다리로 임금의 거동하던 길을 쪽다리,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달라고 하여 이복촌(이북굴)이라고 불렀습니다.
  • 자료관리부서 문화체육관광과
  • 담당전화 02-2155-8310
  • 위치 구청본관 4층
  • 최종수정일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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