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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

유적이야기

우리나라에는 많은 지역에 여시골 즉 여우고개라고 불리는 고개가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인적이 드물고 산세가 험해 여우의 출몰이 심했던 까닭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여우고개는 남태령(南泰嶺)이었다. 이 고개를 여우고개라고 부르게 된 것은 호랑바위가 있는 골짜기에 여우가 많이 출몰하므로 여우골이라 하였는데, 옛날 천년묵은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하여 이 고개에 나타났다는 데서 유래한 설이 있다. 남태령은 서울과 과천의 경계이며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의 고개로 18세기 말 효성이 극진한 정조임금이 수원에 있는 선친 사도세자 능(陵)을 자주 참배하러 다녔는데, 어느날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갈 때 "이 고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엉겁결에 "남태령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에 그를 시기하던 자가 "이 고개 이름은 본래 여우고개인데 어찌 거짓을 고하느냐?" 라고 힐책하자 "고개 이름은 본래 여우고개이지만 신하로서 임금께 그와 같은 상스러운 말을 여쭐 수가 없어 서울에서 남쪽으로 맨 처음 큰 고개이기에 남태령이라 했습니다"라고 아뢰니 정조가 이를 칭찬하였으며, 그 후부터 남태령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남태령이라는 말은 광해군 때 만들어진 춘향전에 이미 나오고 있으므로 정조 이전에 불리어졌으리라고 생각된다.

주소명 : 방배2동 산 184번지 (남태령고개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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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내표석

    안내표석

  • 남태령 서울시계

    남태령 서울시계

  • 남태령 과천방면

    남태령 과천방면

  • 남태령 사당방면

    남태령 사당방면

우면산성뒤골

유적이야기

우면산 서쪽자락에 위치하며 성뒤마을로 가는 계곡으로 옛날 이곳에 큰 성(城)이 있었으며, 그 성을 사이에 두고 아래성뒤(下城後)마을과 윗성뒤(上城後)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당초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였으나 남태령 주변에서 활개를 치는 도둑들 때문에 기존 주민들은 모두 이주하고 이 계곡은 도둑들의 소굴이 되어 일명 "도둑골"로 불려졌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전원마을에서 우면산을 오르는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인근에는 서초전자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주소명 : 서울 서초구 전원말안15길 2-2 (방배동) (전원마을 뒤 등산로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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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내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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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면산 성뒤골 고개

    우면산 성뒤골 고개

  • 전원마을

    전원마을

  • 우면산 등산로

    우면산 등산로

  • 성뒤마을 뒤 계속

    성뒤마을 뒤 계속

승방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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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도성(都城)에서 삼남대로(현재의 동작대로)를 따라서 남태령을 넘고자 하는 스님들의 임시거처가 있던 곳으로 승방평(僧房坪)이 있었으며 여기서 도구머리까지를 "승방뜰"이라고 하였다. 이곳은 험준한 남태령을 넘고자 하는 일반 과객들도 잠시 머무는 곳으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사당역이 있으며 인근에 방배종합사회복지관과 방배 우성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다.

주소명 : 방배2동 2502번지 (사당역 환승주차장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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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당역 쉼터

    사당역 쉼터

  • 사당역 환승 주차장

    사당역 환승 주차장

  • 방배종합사회복지관

    방배종합사회복지관

도구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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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남태령(南泰嶺)을 넘어서 도성(都城)으로 들어가는 들머리 입구(入口)에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도구두(都口頭)"라고 하였으며, 인근에 "도구머리고개", "빈도구머리터"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방배(方背)라는 말은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洞里)라는 설과, 한강을 등진(背) 모서리(方)란 설이 있어서 도구머리와 유사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현재 이 일대에는 이수초등학교와 《방배2동주민센터》가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 도구머리길 입구에는 새우촌 근린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주소명 : 서울 서초구 청두곶길 36 (방배동) (방배2동주민센터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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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내표석

    안내표석

  • 방배1동사무소 입구

    방배1동사무소 입구

  • 이수초등학교 입구

    이수초등학교 입구

  • 도구머리길 새우촌 공원

    도구머리길 새우촌 공원

효령대군이보묘역

유적이야기

서울특별시 지방유형문화재 제12호(1972년 8월 30일 지정)인 청권사는 영조13년 (1737년)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제3대 태종의 둘째아들이며 제4대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묘소로 조선후기 건물인 사당(祠堂)과 초기 유구(遺構)로 추정되는 묘와 석물(石物)이 있으며, 1902년에 제작된 효령대군의 신도비(神道碑)도 있다. 효령대군(1396년∼1486년)은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해 태종을 따라 항상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고 특히 동생인 세종과는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청권(淸權)이란 논어(論語)에 나오는 글귀로 주나라 태왕의 장자(長子)인 태백과, 차자(次子)인 우중이 셋째 계력의 아들 창에게 왕위를 전하고 스스로 도망함을 표현한 「謂虞仲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위우중이일 은거방언 신중청 폐중권)의 고사(古事)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소명 : 효령로 135(방배동) 청권사 정문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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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권사 입구

    청권사 입구

  • 청권사 전경

    청권사 전경

  • 효령대군 묘소

    효령대군 묘소

  • 효령대군 신도비

    효령대군 신도비

성안공상진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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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문고등학교 옆에 성안공(成安公) 상진(尙震)의 묘소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1984년 11월 3일)된 높이 220㎝, 폭 106㎝인 그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상진(1493년∼1564년)은 본관이 목천(木川)이며 호는 송현(松峴), 범허재(泛虛齋), 향일당(嚮日堂) 등으로 1549년(명종4년)에 우의정에 오른 이래 15년 동안 3정승(政丞)을 두루 거쳤으며 인품이 관후(寬厚)하고 인자하여 조야(朝野)의 신망이 두터웠다. 그가 살던 중구 남창동 일대를 상정승골 또는 상동(尙洞)이라고 하였으며 모두들 훌륭한 재상(宰相)으로 우러러 보았다. 1564년(명종19년) 세상을 떠나자 명종은 성안(成安)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주소명 : 서울 서초구 명달로 45 (방배동) (상문고교내 묘소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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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안공 상진묘역 신도비

    성안공 상진묘역 신도비

  • 상진 묘소

    상진 묘소

  • 상진 묘소 전경

    상진 묘소 전경


  • 자료관리부서 문화예술과
  • 담당전화 02-2155-6220
  • 위치 구청본관 4층
  • 최종수정일 2017-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