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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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

오랜 세월 갖은 박해를 이겨내며 피워 올린 성숙된 신앙을 배우고 그 유산을 묵상하게 만드는 풍수원성당은 잠시 잊고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삶의 의의를 비추는 거울처럼 자연 속에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에서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을 지나 횡성 땅에 들어서면 길 좌측으로 아담하고 고색 짙은 로마네스크 서양식 건물, 풍수원성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원도와 경기도 경계지점인 성지봉 기슭에 자리한 풍수원 천주교회는 1846년부터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였던 이승훈의 조카인 이신규가 목신부(Anthony)와 선교를 했던 곳이다.

1801년 신유(순조1년), 1866년 병인(고종 3년), 1871년 신미(고종 8년)박해로 밀린 신자들이 촌락을 이루어 살던 중 1887년 5월 30일 한불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고, 1888년 서울 교구장은 풍수원 성당을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초대 신부로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의 르메르 신부가 부임, 춘천,화천,양구,홍천,원주,강릉,양평 등 12개 군을 사목하였는데, 당시 신자수는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칸을 성당으로 20여 년간 사용하다 1896년 2대 신부로서 한국에서 3번째 사제 서품이 된 정규하 신부가 부임 중국인 기술자 베드로와 함께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 1909년에 낙성식을 가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풍수원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유서 깊은 성당으로 그 보존적 가치가 높아 1982년에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화강석과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두툼한 벽은 호화스럽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대담한 색채가 돋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이 소박하고 아담한 건물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성당 앞에는 이곳의 오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성당 뒤편엔 유물전시관이 있다. 2층으로 구성된 유물전시관에는 초기에 사용하던 성경필사본들을 비롯한 귀중한 서적들과 성수그릇, 유해, 묵주, 십자가 성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을 나오면 오른편에 십자가길이 나온다. 초기 성도라도 되는 양 그 길을 따라 오르면 정규하(아오스딩) 신부님의 묘가 나오고, 이어 6?25때 성모님께 기도를 드렸다가 살아난 미국인 장교가 보내왔다는 성모상이 자리한 묵주동산이 나온다. 푸른 나무들과 하얀 동상이, 자연과 인공물이 빚어내는 콘트라스트는 주위의 농에서 한 폭의 풍경화 속으로 불쑥 뛰어든 느낌이랄까. 내려올 때는 묵주동산 뒤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듯 순례를 마무리하면 좋다.

지어진지 9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건재하며, 1920년 이래 계속되고 있는 성체현양대회 때면 성당의 오랜 역사를 증명이나 하듯 전국에서 10,000여명이 넘는 신도들이 찾아와 이곳은 인산인해의 물결을 이룬다. 횡성군에서는 현재 이곳을 종교적인 성지로서의 의미뿐 만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자 유현문화관광지를 조성중에 있다.


찾아가는 길

  • 횡성나들목 → 서울방향 6번국도 → 풍수원성당 (서울6번국도 → 양평 → 풍수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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