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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및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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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동

내곡동은 옛 언주면의 일부로서 본촌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안골ㆍ안말로 불리우던 것이 한자명으로 내곡동이라 된 것입니다. 현재의 위치는 강남구 남쪽의 구룡산, 대모산의 성남시와 분계되는 인릉산 사이에 형성된 분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재 안골을 위시하여 샘마을, 능안마을, 헌인마을, 홍씨마을, 신흥마을 등의 자연부락이 산재해 있습니다.

  • 내곡동

    옛 언주면의 일부로 본촌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안골, 안말로 불리던 것을 한자명으로 내곡이라 부르게 된 것이 동명의 유래인데, 일명 양지말이라고도 칭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곳에 헌ㆍ인릉이 있어 주택이 들어설 수 없었으며, 수목이 울창하여 호랑이ㆍ여우 등의 짐승이 출몰하던 지역이었다. 내곡동을 둘러 싸고 있는 산 중에 인릉산은 내곡동고 성남시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내곡동 산 13-1번지에 헌릉ㆍ인릉이 자리잡고 있어 산 이름이 되었습니다.

  • 샘마을

    내곡동의 샘마을은 1972년에 창경궁ㆍ창덕궁 인근의 종로구 와룡동 철거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함으로써 형성된 마을입니다. 원래는 박석고개 왼쪽에 정착했으나 1979년 취락구조개선사업 때 헌릉로 현재 신흥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 어둔골

    헌ㆍ인릉 입구 박석고개에서 남쪽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신흥마을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광복 후 월남민들의 개척단이 이룩한 새로 생긴 마을입니다. 원래 이곳은 어둔골이라 하였는데 나무숲이 우거져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옛날에 호랑이도 자주 출현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이곳에는 전국에서 제일 품질이 뛰어난 수제양털이불 생산업체가 들어서 있습니다.

염곡동

九龍山이 감싸안은 廉谷洞은 이 곳 지형이 염통(심장)과 같이 생겼서 염통골 또는 한자명으로 영통곡(靈通谷), 염곡동(廉谷洞)이라 하였습니다. 조선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彦州面 廉谷洞으로 칭해왔다가 1914년 염통골의 이름을 다서 광주군 언주면 廉谷里라 칭하였고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염곡동이 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1973년 서울특별시 영동출장서 관할이 되었고, 1975년 성동구로부터 분리, 신설된 강남구에 속하였다가 다시 1988년 서초구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약 500여년 전부터 全州李氏가 거주를 시작했고, 20여년 이후 거주한 新羅 眞骨 창녕(昌寧) 조(曺)씨들이 90여 가구로 번창한 집성촌으로, 마을전체가 돌담이며 감나무가 많은 마을입니다. 구룡산 전설에 따라 아홉개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았다고 합니다. 8군데가 매몰되고, 현재는 염곡마을 북동쪽에 구룡산 제1약수라는 옛날 옻우물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옻우물이란 약수 이름은 옻이 오른 사람이 이 우물 물을 마시거나 우물 울로 씻어내면 옻이 깨끗하게 낫는다는 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탑성골(塔谷)은 옛날에 탑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염통골에 속한 마을이며, 염곡리는 피난골이라고도 부르는데 6·25 전쟁 당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염곡동 언남공원에 570년된 느티나무 서울시지정 보호수22-1, 22-2 가 있어 이곳에서 주민들이 국가의 안녕과 마을에 악귀를 멀리 쫓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며 제를 지냈다 합니다. 1978년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전 가옥이 현대식 주택으로 변모되었지만 예전의 전원 모습을 그래로 지니고 있는 동입니다.

  • 염곡동

    염곡동은 이곳 지형이 염통과 같이 생겼으므로 염통골 또는 한자명으로 염통곡, 염곡동이라 하였습니다. 염곡동의 현재 위치는 동쪽은 내곡동과 접하고 서쪽은 양재동에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은 구룡산을 경계로 강남구 포이동과 분계되어 있고, 남쪽은 야산을 경계로 신원동과 잇대어 있습니다.

  • 탑성골

    탑성골은 염통골 남쪽 헌릉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버스정류장 이름도 탑성골로 되어 있습니다. 탑곡은 옛날 이곳에 탑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 마을에는 경주 이씨가 11대 이전부터 살기 시작하여 아직도 몇 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 옛날 옻우물

    과거 염곡동에는 아홉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산 전설에 따라 아홉개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1978년동에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8군데가 매몰되고 현재는 염곡마을 북동쪽에 구룡산 제1약수라는 옛날 옻우물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옻우물이란 약수 이름은 옻이 오른 사람이 이 우물 물을 마시거나 우물 울로 씻어내면 옻이 깨끗하게 낫는다는 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 염통골

    염통골 또는 염통곡으로 알려진 염곡동은 집성촌으로 창녕조씨가 많이 거주하고있고 전주 이씨도 몇 거주하고 살고 있는데 전주 이씨는 420여년 전부터 거주하기 시작했고 그후 20년 늦게 창녕 조씨가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 취락구조 개선사업 이전까지는 조씨가 80~90여호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떠나갔습니다.

신원동

신원동은 조선시대 원터 아래쪽에 새로 조성된 마을이므로 「새원」이라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신원동이라 한 것입니다. 신원동의 연혁을 살펴보면 이곳은 조선시대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신원동, 신저도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때인 1914년 3월 1일 전국의 행정구역을 전면 조정하면서 이 때 이곳을 광주군 언주면 신원리라 칭하였습니다. 광복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1962.11.21 공포)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신원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원동의 행정동 변천관계를 살펴보면, 이 동은 1962년말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관할이었습니다. 1963년 1월 1일에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는 서울특별시조례 제276호에 의해 신설된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할의 탑곡동사무소는 신원동과 함께 염곡ㆍ내곡동의 행정을 담당하게 되었고, 1975년 성동구로부터 분리, 신설된 강남구에 속하였다가 다시 1988년 서초구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적으로는 서초구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고, 도로변에는 화훼단지가 조성되어 꽃과 관상수를 재배하는 100여개의 화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원동의 지정 보호수인 수령 100년의 느티나무는 이 마을 사람들 뿐아니라 서울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 신원동

    조선시대 공용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개 위해 역과 함께 각 요로에 설치되었던 원의 터 아래쪽에 새로 조성된 마을로 "새원" 이라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신원동이라 한 것입니다.

  • 평촌

    신원동의 근본이 되는 마을로 본촌이라 하고 또 마을이 벌판에 있으므로 벌말이라고도 합니다. 평촌은 벌말을 한자로 바꾼 이름입니다. 이 벌말 438번지 13호에는 김진사댁이 있었는데 전에 과거를 보던 선비들이 이 사랑방에서 숙식을 하고 갔다 합니다. 취락구조개선 사업으로 대부분 성남으로 이사 가고 지금은 원주민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벌말은 김해 김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으며 6ㆍ25동란 때 인민군이 크게 패한 격전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