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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혁

서초구라는 행정구역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88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367호에 의해 강남구로부터 서초구가 분리신설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서초구 지역에 우리 조상들이 정착 한것은 역사시대 이전으로 올라간다. 민족 문화의 젖줄인 한강을 북쪽에 끼고 우면산, 구룡산 의 산록에 양재천 반포천 사이에 펼쳐진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은 이곳은 일찍이 선인들의 생활터전이었고, 문화의 발상지였다. 즉, 원지동의 지적묘군과 인근 강남구 역삼동의 청동기 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선사유물은 이미 신석기와 청동기 문화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서초구 일대가 역사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또한 오랜 것으로 백제가 한강유역을 중심 으로 고대국가로서의 성장발전과정에서 그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는 데서 알 수 있으며, 지리 적으로 위례성 서쪽에 인접함으로써 도성 외곽 경작지로서의 기능을 한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고려시대에도 지리명이 여러명 바뀌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서초구 지역이 과천군 동면과 광주군 언주면에 속하게 되었다. 다시 일제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대에 의해 성동구 언주 출장소와 영등포구 신동파출소 관할로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8에 의거 관악구가 신설됨에 따라 관악구와 성동구 영동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5년 에 접어들어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로 강남구가 신설되어 관악구 방배동을 제외 한 9개동이 강남구 관할로 개편되었고, 1980년에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로 서초구 지역은 모두 강남구에 편입되었으며, 서초구 지역이 현대 도시로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것은 1965년 서울특별시 도시기본계획 부도심으로의 개발이 결정되어 1968년 영동 제1차 토지구획 정리사업이 추진되면서 부터이다. 그 후 연차적인 토지구획 정리사업에 의해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어 오늘날과같이 선진도시 로서의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동연혁

방배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방배리로 불리었고, 1914년3월1일(일제)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방배리가 되었다. 이후 1963년1월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방배동이 되었고, 인근 사당동과 함께 남성동사무소에서 행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1970년5월18일 법정동과 행정동 사이의 명칭을 일치시킬 때 남성동사무소는 사당동사무소로 바뀌면서 동시에 사당1동과 사당2동으로 분동 되었으며, 방배동의 행정은 사당1동사무소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3년7월1일자로 관악구가 설치되자 관악구에 속하게 됐으며, 1975년10월1일 사당1동에서 방배동으로 분동되어 비로서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하게 되었다.
1978년 10월10일 방배동은 방배1동과 방배2동으로 분동되었다. 그리고 1980년 4월 1일에는 사당동 일부와 함께 강남구로 편입되었다. 동시에 편입지역으로 인해서 방배본동이 증설되면서 방배1동과 방배2동의 관할 구역이 현재와 같이 조정되었다.

인구

  • 인구 : 9,654세대 23,072명 (남 10,954명, 여 12,118명) [2019년 1월 1일 기준]
  • 면적 : 1.94㎢ (구 전체의 4.12%)
  • 통,반조직 : 44통 292반